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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12-30
제목 신해양시대 '쇳대' 해항도시 12-공생, 해항도시 네트워크를 향하여
문화교섭의 배움터, 해항도시

지금까지 부산을 출발하여 인천, 중국의 칭다오, 상하이, 광조우, 타이완의 가오슝, 일본의 나가사키, 요코하마, 고베, 후쿠오카를 돌아보았다. 이 과정에서 이들 해항도시는 한결같이 국가를 초월한 지역적인 교섭의 확대 속에서 문화의 다양한 측면이 계승되며, 이질적인 것이 동적으로 혼교하며, 혁신적인 사상과 인재가 형성되는 공명공간(共鳴空間)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생활과 활동에 관한 미술품에서 생활용구에 이르기까지 귀중한 문물, 문헌, 사진이나 지도 등의 도표를 포함하여 수많은 자료들을 접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교류의 발자취였으며, 이를 통하여 다양성에 충만한 사회, 문화,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이들 해항도시는 우리가 주목해야할 몇 가지 중요한 사회문화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교류의 역사성을 들 수 있다. 해항도시는 현대자본주의가 선도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 훨씬 오래전부터 이미 사람·정보=문화·상품의 교류의 장으로 기능해 왔다는 점이다. 둘째, 초국가적 영역성을 들 수 있다. 해항도시는 당연하게도 해양을 향해 열려 있으며, 그로인해 한 국가의 영역으로만 머물지 않는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항상적으로 이문화 혼교의 경험이 전개되고 있는 접촉공간으로서의 성격을 들 수 있다. 해항도시에서는 이문화 혼교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차별이나 충돌의 경험도 있지만, 그 극복의 경험을 축적시켜 왔다는 아주 중요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러한 해항도시가 지닌 중요한 사회문화적 성격에 주목하는 것이야말로 국적?종교?인종을 뛰어넘어 타자와 서로주체가 되는 21세기적인 공공의 공간을 구축해 나가는데 필요한 조건과 그 과정을 밝혀 나갈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최근 부산과 후쿠오카 사이에 초광역경제권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필자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부산-후쿠오카 초광역경제권을 향하여

2009년 2월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 두 해항도시가 부산에서 '우정의 해' 기념식 및 초광역경제권 경제협력협의회 포럼을 가지면서 경제공동체를 선언하고 나섰다. 두 도시의 초광역경제권 형성 논의는 국가 주도가 아닌 해항도시 사이의 네트워크라는 점에서 더욱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21세기 글로컬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해항도시 네트워크가 주목받기 시작한 당연한 귀결이라 볼 수 있다.

부산과 후쿠오카는 대한해협 200㎞ 바닷길을 사이에 두고 고대부터 교류해 온 가까운 이웃이다. 두 도시는 지난 1989년 행정교류도시 협정 체결을 시발로 2006년 학계·언론계·산업계 등 민간인 지도자들이 단순교류를 넘어 경제공동체 형성을 지향하자는 뜻에서 '부산-후쿠오카 포럼'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2008년 8월 한국의 동남권과 일본의 규슈 지역을 아우르는 초광역경제권 형성을 위한 협력을 선언했다. 이는 두 해항도시가 국경을 초월한 네트워크화를 시도하고 나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에게 바다는 경계와 단절의 공간이 아니라 언제나 소통과 상생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두 도시 간 네트워크 결성은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해항도시 간 상생 네트워크 형성은 세계화와 지방화를 동시에 반영한 글로컬 관점에서 보더라도 중요한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닐 수 없다.

부산-후쿠오카 초광역경제권 선언이 지중해 개념에 기초한 상생과 자립의 해항도시 네트워크를 지향한다는 점. 그리고 그 주체가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자체라는 점이 지금까지의 국가간 교류와는 다른 점이다. 이는 앞에서 보았듯이 해항도시의 교류성, 초국가적 영역성, 문화의 잡종성과 같은 사회적 성격의 역동적 발현으로 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동아시아의 해항도시, 나아가 세계의 해항도시 네트워크를 선도하기 위한 해항도시의 핵심 가치인 공생 논리를 세계인을 향해 발신하였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먼저 해항도시가 지니는 다문화교섭과 공생의 역사적인 가치를 학문적으로 정립하는 일이다. 그 토대 위에서 정책이 전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는 해마다 세계해양포럼이 열린다. 세계 해항도시의 풍부한 경험과 예지가 한곳에 모여 집단지성이 형성되고 있다. 세계 해항도시의 당국자들이, 기업가들이, 시민단체들이, 학자들이 한데 모인다. 해양을 통한 공생을 지향하는 이러한 네트워크는 국가간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도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남해안시대가 열린다. 2012년 여수에서 바다를 주제로 하는 세계박람회가 열린다. 부산은 남해안의 해항도시들과 연계해서 충분히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공동으로 천혜의 역사문화자원을 지키고 가꾸어야 할 것이다. 이는 그간에 있어왔던 동서간의 지역 장벽과 갈등을 허물고 공생하는 가능성을 해항도시가 연계하며 형성하는 공생의 해역공간을 통하여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섬진강을 흐른 물과 낙동강을 흐른 물이 가장 낮은 바다에서 한데 만나듯, 동서는 해항도시를 통하여 만나고 나아가 서해안과 동해안의 해항도시들과도 만나야 할 것이다.

해항도시 네트워크의 원리는 다름 아닌 상대와 다투지 않고 상생하는 데 있다. 해항도시는 단순히 그곳에 사는 개인의 취향과 영리를 위한 공간만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가 일상적으로 어우러지며 나눔과 공존을 느끼는 공간이고, 공생을 일깨우는 숭고한 공간이다. 북유럽의 신한자도시네트워크처럼 동아시아에서도 이념과 국경을 넘나들며 공생했던 해항도시의 힘을 다시금 네트워크로 엮어내어야 한다. 이는 자극적인 인간들의 기호만이 무한한 욕망과 함께 소비되는 글로벌시대를 이겨내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해항도시를 거닐며 배우는 문화교섭학

그러면 해항도시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되어 왔던 그토록 다양한 문화교섭의 경험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먼저 하나의 해항도시가 역사적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다른 해항도시와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모든 해항도시는 경계를 뛰어넘어 소통하는 크로스보더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항도시는 당연히 국가간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반공정책 하에서 위축되었던 부산과 인천의 차이나타운이 최근 중국과의 확대되는 교류 속에서 급성장하는 측면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항도시사회 내의 차별화와 계층화 문제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민족?종교와 같은 이문화가 일상 속에서 접촉하며 관용과 불관용의 실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비롯한 폐쇄성은 물론 횡단하는 대중문화와 갈등 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념의 해항도시든 관계없이 모든 해항도시에서는 민족과 종교와 국가를 뛰어넘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질적인 사람과 상품과 문화와 정보들이 해항도시에서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해항도시에는 중심이 없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모든 곳이 출발점이자 종착점이고 귀착하는 곳이다.


무너져 내린 지식더미와 새로운 지적기법

솔직히 해항도시를 거닐면서 경험한 거의 모든 것이 새롭고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많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많은 자극도 받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필리핀의 해항도시를 탐방했을 때 필자는 종교적 가치관마저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마젤란이 상륙하였다 그곳의 추장 라푸라푸에게 죽었던 세부섬을 비롯한 필리핀의 부속 섬들을 경비행기와 페리를 이용하여 돌아다니면서 교회의 방조 하에 자행된 스페인인들의 엄청난 만행과 수탈의 현장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마찬가지로 행한 것이었다.

천혜의 땅, 이 풍요로운 땅에. 온갖 꽃들과 과실들이 지천으로 넘치는 이 땅에. 온갖 벌레들이 득실대고, 그것을 먹이로 하는 새들과 짐승들이 그야말로 살찌는 이 풍요로운 땅에. 하지만 유독 그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한 이곳의 인간만은 왜 이토록 척박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고압적인 편리공생의 결과가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고압적인 서양풍의 건물의 그늘에 가려 초채하게 시든 듯한 아시아인들의 가옥들은 아시아 해항도시 어디나 한결같다. 위세 당당한 서양인에게 사역당하는 굴욕적인 아시아인들의 모습도 아시아 어느 박물관을 가더라도 접할 수 있다. 후지와라 마사히코는 『국가의 품격』에서 한 국가의 품격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만들어 가는 향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여태껏 맡아온 서양의 국가들의 향기는 과대포장되고, 게다가 진정한 구린내를 맡을 수 없게 뿌려진 온갖 향수의 냄새였던 게 아니었을까.

진실과 사실은 다르다.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사실들은 무엇을 위해 유익한 것일까. 해항도시를 거닐면서 필자는 그 동안에 쌓아온 자신의 지식더미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에 가득 찬 지금까지 배워온 지식들이 숨을 곳을 잃고 벌거숭이가 되어 수치심에 떨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 인간들이 보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참된 공생, 서로가 행복할 상리공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공생은 서양과 동양을 따질 것 없이 모두에게 바람직한 것으로 결코 저버릴 수 없는 보편적 가치이다. 좀더 행복한 사회는 편리공생이나 기생과 같은 식의 부정적인 공생이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주류적 삶의 방식이 되지 않을 때 가능해 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각자가 삶의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삶의 주권을 되찾는 첫걸음은 자신에 대해 성찰할 용기를 되찾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공동체적 가치를 복원하고 사회적인 격차를 극복하며 좀더 조화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한 지적 기법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 그것이 바로 해항도시 탐방이었던 것이다.

해항도시를 다니면서 또 하나 커다란 즐거움은 맛있는 먹거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언제나 이야기했듯이 어느 해항도시나 그 특유의 먹거리가 있고, 그것은 오랜 역사적인 교류 속에서 새로이 탄생된 상징과도 같은 것이어서 더욱 즐거웠다. 자장면에서 짬뽕, 카스테라, 계란소면, 라면 등등 동아시아 내에서의 문화교류는 물론 동아시아와 서양과의 교류로 탄생한 많은 매력적인 먹거리들이 여행하는 내내 즐거움을 주었다. 반면 가장 아쉬운 점은 필자에게 소통을 위해 필요한 언어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늦게나마 중국어를 배우고 영어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도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내년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해항도시들을 돌아다닐 계획인데 또 어떤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 기대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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